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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띠(sati : 念) 새김 념(念)
| 분류 : 교리 | | 2008·11·24 13:36 | HIT : 3,058 | VOTE : 899 |
싸띠(sati : 念) 새김 념(念)

역자의 번역과 다른 초기경전의 역자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진 번역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싸띠(sati)에 대한 것이다. 최근에 위빳싸나 수행자들 사이에 이 싸띠를 두고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마음지킴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싸띠는 내용적으로, 마음이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것이며, 분별적인 사유나 숙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을 알아채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을 단순히 고려한다면, 싸띠를 ‘마음챙김’이나 ‘마음지킴’으로 번역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몇 가지 모순을 갖는다.
첫째, 모든 가르침의 요소들이 마음과 관계되는 것인데 유독 싸띠에만 별도로 원래는 없는 마음이란 단어가 부가될 이유가 없다.

둘째, 올바른 ‘마음챙김’이나 ‘마음지킴’이라는 말은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지향하는 올바른 정진과 특히 내용상 구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네 가지 새김의 토대[四念處]에서 토대가 되는 명상주제의 하나에 마음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을 두고 마음에 대한 마음의 ‘마음챙김’이나 마음에 대한 마음의 ‘마음지킴’이라고 삼중적으로 번역하는 잘못이 발생할 수 있다.

넷째, ‘싸띠’라는 빠알리어 자체에는 ‘마음’은 커녕 ‘챙김’이나 ‘지킴’이라는 뜻도 어원적으로 없다.

이 싸띠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 직접 <쌍윳따니까야>에서 정의 내린 부분 -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멀리 떠나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면(anussarati anuvitakketi.), 그 때 새김의 깨달음의 고리가 시작한다.(45:3)’ - 을 참고하여 번역하는 것이 제일 타당하다.

여기서는 분명히 기억과 사유가 새김의 전제조건으로 확실한 싸띠에 대한 해석학적 설명, 즉 기억과 사유의 일치점을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싸띠라는 말은 범어 스므리띠(sk. smrti)의 빠알리어 형태로 원천적으로 ‘기억’이란 뜻을 갖고 있으나, 기억과 사유가 일치하는 ‘지금 여기에서의 분명한 앎’이란 의미도 갖고 있으므로 그 둘 다의 의미를 지닌 우리말을 찾던 역자는 ‘새김’이 가장 적당한 번역어라고 생각했다.

새김은 과거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조각(彫刻)’ - 물론 사유를 은유적으로 이해할 때에 - 이라는 의미를 모두 함축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없이는 사물에 대한 지각을 올바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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