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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寺)에 절(拜)하러 가는 마음
| 분류 : 일반 | | 2008·11·09 14:35 | HIT : 8,595 | VOTE : 629 |
절(寺)에  절(拜)하러 가는 마음


절(寺)에 절(拜)하러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절이라는 말이 가진 불교적인 두 가지 의미를 오늘 생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1. 절(寺).
사찰을 가리키는 절의 유래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묵호자가 묵었다 는 '모례(毛禮)의 집'에서 나왔다 합니다. 모례는 이두 식으로 읽으면 털 모이므 로 털례가 됩니다. 이 털례가 민간에서 줄인 말로 털이 되었고 이 말이 절로 되었다 합니다.

그러면 털례는 무슨 말인가 생각해 봅시다. 묵호자(墨胡子)란 검은 오랑캐라는 말로 불법을 전하러 온 이방인을 뜻합니다. 용모가 우리와는 다른 외국인을 뜻하는 말이지요. 속된 말로 서양사람들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젊잖케는 양인(洋人), 낮추어서는 양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로부터 우 리 나라 사람들은 외국을 낮추어 부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미국 아이들이 큰 일 저지르겠어' '이번에 소련아이들이 장난을 치려나 봐' '일본 애들이 까불려고 해' 나라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른들의 문답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이 야기입니다.

그러면 묵호자는 외국에서 오신 스님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겠는데 털례의 집 은 무엇이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지금까지는 털례를 사람이름 즉 고유명사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털례는 사람이름이 아니라 외국 스님 들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존자(尊者), 장로(長老)를 뜻하는 말이 테라(TERA)이므로 외국스님들은 스스로를 테라로 불렀고, 그것을 당시 사람들 이 털례로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남방에서는 큰스님을 테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로 일본에서는 절을 가리키는 사(寺)를 '데라'로 읽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있습니다. 일본의 불교와 명칭들이 우리 나라에서 건 너 간 것이 많으니까요.

이상의 고찰을 종합하면 절(사찰)은 '털례의 집' 곧 '존자가 머무는 집'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에 간다는 말은 존자, 장로, 존경을 받을 만한 어른이 머무는 집에 가서 법문도 듣고 부처님도 뵈옵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절을 한다는 의미는 명확해 집니다. 그 것은 어른을 만나 뵙는 의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불교적인 어른을 뵙는 의식 은 오체투지(五體投地)이므로, 오체투지가 자연스럽게 절을 가리키는 말이 되게 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내 온 몸을 던져서 당신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 되겠지요.

2. 절(拜).
그러면 이제부터 사찰을 가리키는 절(寺)이 아닌, 의식을 뜻하는 절(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절(拜)은 예배와 존중 그리고 찬탄의 의 미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수행의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수행으로서의 절을 하 는 목적은 하심(下心)을 배우는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요.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맹목적으로 자신을 낮춘다고 하면 서 보다 높은 것을 구하려는 상대적인 생각 즉 교만함을 숨기고 있는 경우도 있 을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존자를 뵙는 의식의 의미를 분석함으로서 절의 의 미를 하나씩 도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결론은 하심(下心)과 같은 것이 되 겠지요.

존자 장로 부처님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어른 앞에 서면 우선 선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선물은 최고의 어른이 원하시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께서 간절히 받기를 원하시는 선물은 바로 우리 어리석은 이들의 어리석음일 것 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슬픔 살면서 느끼는 온갖 감정을 숨김없이 부처님께 드 려야 할 것입니다. 드림을 통하여 부처님의 사랑과 지혜의 빛 속에서 나의 고통 뿐만이 아니라 기쁨까지도 정당한 것인지를 검증 받아야 할 것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일어난 그 밑바탕 즉 판단의 근거까지를 비우고 새롭게 반성해 보는 의미(照顧脚下)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어서 기뻤다고 한다면, 그 기쁨의 감정 속에 그 사람에 대한 우월감이나 지배하려는 욕구는 숨어있지 않았는지 내 말을 따르는 그 사람에 대하여 그의 입장이나 그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내 식대로 함부로 생 각하지는 않았는지, 내 말이 옳다는 것을 확인 받은 것 같아서 내 편견이나 고 정관념이 더 깊어지는 계기는 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금 이라도 그러한 것들이 남아있다면 그것마저도 부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고 통에 대해서도 간절한 소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뿌리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다 드립니다. 부처님의 사랑과 빛 속으로 다 던져 버립니다. 드린 것 은 부처님께서 다 받으시므로 행여나 내 간절한 소원을 부처님께서 못 받으시는 것은 아닌지 재삼재사 다시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 보살을 못 미더워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아니 불 보살이 아닌 내 생각에 절을 하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 주일의 생활 또는 보름 동안의 생활 또는 지난 세월 생활의 생활 전체를 다 드립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한 차례 한 차례의 절을 합니다. 더 드릴 것이 없을 때 불 보살의 사랑에 대한 절을 합니다. 우리들의 모든 마음의 움직 임은 불 보살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므로 더 드릴 것이 없으면 불 보살 의 사랑을 느끼며 그 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불 보살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서 그 빛과 사랑과 하나가 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절을 하는 이도 절을 받는 이도 없는 삼매입니다. 모든 생명은 본래 부처 님이라는데 우리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집착)과 온갖 허위의식 편견(相)을 모두 불보살께 드려서 버리면 우리 모두 불 보살과 하나가 됩니다.

절을 하는 목적, 불 보살을 뵙는 목적은 그 분께 무엇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과 하나되어 불 보살로 내가 하나되어 내가 불 보살로서 살 아가기 위함입니다. 한없는 절 오체투지를 통하여 내 마음을 낮추는 것이 아니 라 비워 나가는 것, 이것이 의식과 수행으로서의 절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비우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비우면 본래 있던 내 생명의 본 모습은 저 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의 본 모습은 부처님의 그것과 같다고 부 처님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존경스러운 어른이 계시는 곳에 가서 그 어른께 내 삶을 모두 드리고 그 어른과 닮아서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 어른과 하나가 되 어 새롭게 태어난 나 자신 불 보살로서 살고자 한다. 하여 예배의식으로서의 절 은 그대로 수행이 됩니다.

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굴신운동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절을 굴신운동으로 생각하면 절은 굴신운동 그 자체일 뿐 입니다. 중요한 것은 절하는 행위가 아니라 절하는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절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드리는 것이고 그 비움과 드림을 통 하여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는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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